公元3世紀中後葉百濟國家誕生後便出現了城牆聚落,從此開辟百濟最初的都城. 百濟最早的都邑漢城或慰禮城(即今首爾),稱爲漢城期. 475年,漢城爲高句麗所陷落,遷都於熊津(即今忠清南道公州),稱爲熊津期. 此後,538年再次遷都於泗沘(即今忠清南道扶餘),稱爲泗沘期. 漢城期都城由風納土城和夢村土城組成,兩城相距不到1公裏,其中北側的風納土城規模更大,是較早的都城,南側的夢村土城被推定王城. 熊津都城被認爲具有應急避難性質,所以修築了主要作爲防禦的公山城,但在都城功能上存在不少問題,比如城市空間不夠等. 爲了解決此類問題,百濟有計劃營造了新都城,即泗沘都城. 泗沘都城將扶蘇山城和羅城即外郭融爲一體,以此提高都城防禦能力,又以外郭區分京域範圍,以網格形系統規劃城市空間,這些特點是韓半島古代都城中前所未見的新因素.
3세기 중후기 백제의 국가 탄생 이후 곧 성벽이 있는 취락이 탄생했다. 이로부터 백제 최초의 도성이 건설되었다. 백제 최초의 도성이 한성, 혹은 위례성에 있던 시기를 한성기라 부른다. 475년 한성이 고구려에 함락되자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하는데, 이를 웅진기라 부른다. 그 후 538년 다시 사비로 천도하는데, 사비기이다.
한성기 도성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으로 구성되었으며, 두 성 사이의 거리는 1km가 되지 않는다. 북쪽에 있는 풍납토성의 규모가 더 큰데 비교적 이른 시기의 도성이다. 남쪽의 몽촌토성은 왕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웅진도성은 피난처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주로 방어를 목적으로 공산성을 쌓은 것으로 보이는데, 성시공간의 부족 등 도성 기능상 적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제는 새로운 도성을 조영하고자 했으니 바로 사비도성이다. 사비도성은 부소산성과 나성, 즉 외곽성이 일체가 된 것으로, 이로부터 도성의 방어능력이 높아졌다. 또한 외곽으로 도성의 범위를 구분하고 바둑판 형식으로 도시공간을 구획했다. 이런 특징은 한반도 고대 도성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요소들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