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에서 7세기 扶餘와 益山地方의 日常生活遺蹟에서 발견되고 있는 백제 토기에 대한 양상을 통해 성격을 검토해 보았다. 양 지역에 나타난 일상생활용 백제 토기는 회청색경질토기, 흑색와기, 회색토기, 칠토기로 구분하여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양 지역의 토기류는 대부분의 기종에 있어서 유사성이 인정되어 전문화된 工人集團에 의해 제품화되어 공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양 지역의 토기를 자세히 비교해보면 기종․규격의 다양성, 소성 등에서 다소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익산 왕궁리 유적이 천도와 관련하여 중요시 되고 있기 때문에 백제 토기를 통해 그 성격을 추측하여 보았다. 그 결과 익산 왕궁리 유적은 천도에 의해 만들어진 왕궁이 아니고 왕이 행차하여 머무를 수 있는 행궁으로 보았다. 백제 전 지역 중에서 익산지역에 행궁을 조성하고 미륵사․제석사와 같은 많은 문화적인 혜택을 준 것은 당시 도성인 부여의 위성도시를 이곳에 건설하여 익산 이남지역의 정치․문화․경제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려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자연히 이곳에서 발견된 백제 토기는 부여 도성 내부의 토기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것이며 중앙에서 분배한 보급용 토기로 보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