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남북조시대부터 수대에 이르기까지 舍利의 안전한 봉안을 위해서 탑 심초보다 더 깊은 지하에 舍利石函(사리석함)을 매납했다. 중국 양으로부터 불교문화를 받았던 백제는 사리 봉안 방법도 도입했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백제의 목탑지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능산리사지 목탑이 건립되었던 567년까지는 심초가 지하에 조성되는 굴립주 방식이 사용되었으며, 사리 봉안을 위한 시설인 석함은 능산리사지와 같이 별도 제작되어, 심초 상면에 놓여졌다.
심초석과 사리공이 결합된 형식은 중국과 고구려에서는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고, 백제와 그 영향을 받았던 신라와 일본에서 찾아진다. 이러한 사리 안치 방식은 일본의 飛鳥寺(비조사) 목탑이 조영된 6세기 말에 들어와서부터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