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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미술

대전 월평동 유적 출토 양이두 고찰

  • 분류 고고·미술 > 유물
  • 권호수 제6호
  • 저자 주재근
  • 발행일 2005년
  • 게재지 한국전통음악학
  • 발행처 한국전통음악학회

목차

Ⅰ. 머리말
Ⅱ. 대전 월평동 유적
Ⅲ. 발굴된 양이두 고찰
Ⅳ. 대전 월평동 양이두 출토의 의의
Ⅴ. 맺음말

요약

대전 월평동 유적은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군사 방어용의 관방유적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나무로 만든 지하창고인 목곽고이다. 목곽고에서 양이두를 비롯한 나무로 만든 그릇, 숟가락, 말안장 등 다량의 목기와 목제도구, 구슬 등이 발견되었으며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대략 6세기부터 7세기로 측정이 되었다. 월평동 양이두는 신라금의 양이두와 가장 비슷한데 신라금의 양이두가 좌우 대칭이 비교적 정확하고 세련된 가공 마무리 등으로 보아 월평동 양이두가 신라금 양이두의 고형일 가능성이 크다. 현행 정악가야금과는 달리 월평동 유적의 양이두는 몸통에 꽂아 쓰도록 되어 있는데 신라금과 『악학궤범』의 가야금도 꽂는 형태로 되어 있다. 월평동 유적 양이두의 구멍난 방향으로 보아 매는 부분은 정확하게 단언 할 수 없지만 현을 조이고 댕기는 힘은 이 양이두를 중심으로 해서 아래쪽 몸통으로 직접 전달되었을 것으로 본다. 월평동 유적 양이두의 악기를 명명하는 것에 대해 아직까지 학계에서 논의된 적은 없지만 예전 백제 지역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악기명칭에 국명을 붙이는 관례에 따라 백제라는 국명을 붙이고 다음으로 현악기의 보통 지칭명사인 금이나 고를 붙이는 예에서 ‘백제 8현금’이 더욱 타당하다고 본다. 6세기 백제지역에서 만들어진 월평동의 양이두가 신라금의 양이두와 비슷한 점에서 문헌적인 기록에만 의존하여 낙동강 유역으로 한정하여 가야금의 시원을 밝히는 것은 반드시 제고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광주 신창동 유적, 경산 임당동 유적,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발견된 현악기의 예를 비추어 마한, 변한, 진한의 공통된 현악기가 기원전후로 형성되었다고 한다면 6~7세기 대전 월평동의 유적에서 나온 백제 8현의 양이두와 함께 5~6세기경의 신라 토우, 8세기경의 신라금이 종합적으로 조망되어 가야금의 시원은 물론 한반도 남부의 독자적인 악기 발달사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 월평동 유적의 양이두 출현은 비록 몸통은 아직 찾을 수 없지만 그 자체로 한국고대음악사 연구에 하나의 밑거름이 될 수 있으며 기존 문헌위주의 연구에서 음악도상학이나 음악고고학과 연계하여 병행 연구할 수 있게 하는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필자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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