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관북리 금동광배의 현황
Ⅲ. 관북리 금동광배의 양식적 특징과 제작연대 고찰
1. 백제 문화에 대한 성격 문제
2. 광배의 문양 비교 - 頭光과 身光 그리고 연화문
3. 광배의 문양 비교 - 화염문
Ⅳ. 조각사적 의의 - 제작국과 관련하여-
Ⅴ. 맺음말
요약
부여 관북리출토 금동광배의 편년과 제작국에 대해서 중국 북위불상광배와의 형식과 양식비교를 통하여 제작연대를 추정하였다.
관북리 백제유적에서 출토된 금동광배는 광배 외연을 따라 장식용 결구공이 부착되어서 그 외형뿐만 아니라 결구공의 기능과 관련해서도 주목되는 작품이다. 또한 국내에서는 이와 유사한 작품을 볼 수 없어 제작시기를 추정하는 문제에도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중국 북위 보태2년명(532)불상광배가 관북리 금동광배처럼 광배 외연을 장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투공형의 결구공이 부착되어 이 광배의 제작연대를 추정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또한 광배내 화염문의 표현기법이 절대연대를 가지고 있는 북위 정광3년(522)명삼존불입상광배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북위 정광연간과 6세기 초반의 불상들 중에는 광배 외연으로 천인상을 표현한 예가 있어서 관북리 금동광배 역시 광배 외연으로 부착된 장식용 결구공에 천인상을 연결하여 장엄적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북위 정광연간삼존불입상광배의 경우 천인상을 끼워넣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더라도 관북리 금동광배의 장식용 결구공도 천인상을 연결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위의 사실만 놓고 본다면 관북리 금동광배는 중국작품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두원광내 연화문이 웅진기부터 나타나는 세판현상으로 13엽으로 표현되었다든가, 화염문의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상승형 불꽃이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제이식과 와운문전내 구름형태와 표현방식에서의 유사점, 그리고 두광과 신광 및 광배의 의장이 단순한 점 등,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광배는 중국작을 모본으로 한 백제에서 제작한 광배가 아닐까 한다.
비록 북위와의 교류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는 않지만 당시 삼국이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중국을 통해서 문화를 수용하여 자국화하였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백제 또한 시대적인 흐름 즉, 당시의 문화적 경향성에 발맞추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정림사지에서 출토된 도용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북조 문화의 영향이나 익산 왕궁리 유적이 북위의 도성제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에도 백제 문화에 대한 중국 북조의 영향은 남조의 그것 못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