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강 유역의 유물산포지에서 출토된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구체적 유구상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이 지역에도 일찍이 청동기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공백 없이 취락집단의 존재가 드러나고 있다. 이들 취락집단은 초기에 주변에 널리 분포한 지석묘를 축조하였을 것이다. 그후 초기 철기시대에 이르러 토기제작이나 수공구의 발달, 어로기술의 보급으로 지석강유역의 취락집단의 생활은 상당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이같은 수준의 석기문화는 영산강이나 보성강, 섬진강유역에서도 동시기 발달하고 있었고 이들이 문헌에서 말하는 마한사회의 선주집단이었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밖에 다수의 경질토기, 개배, 기대 등의 출토로 보아 이곳에서는 백제시대에도 취락집단의 거주가 꾸준히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의 중심연대는 1세기 전후이며 출토유물의 하한은 백제후기까지 떨어진다. 그러나 1세기 이후 이 지방은 마한의 잔여세력집단이 독자적 국가형성이 서서히 이루어진 시기이며 오늘날 광주의 중심지가 석기시대에는 지석강유역이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