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지역은 전북 지역에서 가장 많은 불상이 조성된 지역으로서, 일찍부터 주목 받아 왔다. 삼국시대 불상이나 사찰은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禪宗九山門 가운데 하나인 實相山門이 개창된 것이다. 또한 9세기부터 10세기 초에는 통일신라 불상 양식을 반영하면서도 이 지역만의 특색을 갖는 불상을 조성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충청․전라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던 거석불과 함께 통일신라 불상의 여운이 남아 있는 불상을 비롯하여 삼국시대 불상을 연상시키는 古式 불상 등 다양한 양식의 불상을 조성하기도 한 곳이다.
池塘里 石佛立像은 삼국시대 백제 불상을 연상시키는 고식 불상이지만, 얼마 전까지 후백제 지역의 불상을 다루는 데 간략하게 다루어지는 등 그리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최근에 들어서야 전북 지역의 고려시대 석불 가운데 삼국시대 불상을 계승하고 있는 ‘고식양식’의 불상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지당리 석불입상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 어떤 배경 아래에서 누가 조성하였을까 하는 점을 밝혀 보았다.
지당리 석불입상은 형식뿐만 아니라 양식상으로도 백제 불상을 모방하고자 노력한 불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상은 백제 불상과는 다른 고려시대 불상의 요소, 다시 말하면 ‘거석불 양식’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불합리한 양감이나 선각의 표현 등을 통해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남원 지역 다른 계열의 불상과 비교해 보면, 그 조성 시기의 상한은 10세기 4/4분기 이전으로, 그 하한은 11세기 2/4분기로 비정할 수 있다.
남원지역에서 이와 같은 불상을 조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원 지역에 백제시대 중요한 교통로상의 거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 거점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남방성이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지역에 이식되었던 백제 불교문화와 백제에 대한 귀소의식이 고려시대까지도 백제계 토착민들에게 면면히 이어졌기 때문에 이 지당리 석불입상과 같은 불상을 조성할 수 있었다.
요컨대, 지당리 석불입상은 백제 불교문화의 토대가 잘 갖추어져 있던 이 남원 지당리 일대에 살던 백제계 토착민이 고려시대에 들어서서 백제 불상을 모본으로 하면서도 당대 유행하던 ‘거석불 양식’ 불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한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