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는 『삼국유사』에 창건과 관련한 기록이 있으며 무왕과 왕비가 미륵삼존의 출현을 계기로 당과 탑, 낭무를 세 곳에 건립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발굴 조사를 통하여 미륵사의 배치는 중원과 동서 삼원으로 구성되며 각 원은 탑과 금당이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배치는 문헌기록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미륵사 서원에 세워져 있는 미륵사지석탑은 1915년 일본인들이 콘크리트로 보강한 상태였다. 이 석탑은 본래 9층으로 추정되며 석재를 사용하여 목조탑을 표현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의 시원이다. 미륵사지석탑은 석탑의 해체조사 결과 상층부에서 개축 흔적이 계속 발견되었고 1층도 구조적 변형이 확인되어 안정 층위를 찾기 위한 해체조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2009년 1월 1층의 제1단 심주석 상면에서 사리공이 발견되고 내부에서 사리호와 사리봉안기 등 유물이 노출됨에 따라 해체조사를 중지하고 긴급 수습조사를 진행하였다.
층위별 수습 유물과 매납 순서를 살펴본 결과 1층 심주석 중앙에 방형 사리공을 가공하고 바닥면에 유리판을 깐 후 다양한 공양품을 차례로 안치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사리공 주변에 원형합을 두고 이들 사이에 구슬을 채운 후 은제관식과 금제소형판, 장신구, 칼 등을 올려놓았다. 북측과 서측벽면 쪽은 직물로 공양품들을 덮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상 층위는 남측 벽면에 비스듬히 사리봉안기를 올려놓고 정 중앙에 사리호(금동제 외호-금제 내호-유리제 사리병)를 안치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 조사를 통해 첫째 미륵사의 창건 목적과 주체를 밝힐 수 있었고 둘째 수습된 유물들로 보아 당시 백제 문화의 위상과 사리봉안 의례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셋째 미륵사지석탑의 건립연대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7세기 미륵사의 조영 배경과 동아시아에서의 불탑 건축 경향, 그리고 백제의 금속공예를 비롯한 대외문물 교류, 무왕대 정치적 상황 등 백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번 발견된 사리장엄은 그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유물이 일괄 수습되었다는 점에서 무령왕릉 발굴, 능산리 금동대향로 등과 함께 백제지역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판단되며 향후 관련 학제간 연구를 통하여 7세기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의 상징인 미륵사의 위상을 밝혀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