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무령왕릉 출토 청동시저
III. 중국 남북조 묘장-출토유물의 구성
IV 무령왕릉 출토 청동시저의 성격
V. 결론
요약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청동시저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출토 상황과 제작지에 대한 고찰,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청동시저에 대한 성격과 의의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였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3점의 청동숟가락과 2벌의 청동젓가락 가운데 청동발 내부에서 출토된 한 점은 중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 연도 입구와 현실 입구에서 발견된 청동시저 2벌은 중국에서 제작된 것을 본으로 하여 백제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았다. 그것은 청동시저 2벌의 청동 소재가 다른 한 점과는 판연히 다르고 제작수법을 살펴보아도 술부와 자루의 형태, 두께, 그리고 자루의 양단을 따라 시문한 수법도 아직은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왕비의 관에서 출토된 숟가락이 중국에서 제작되었다고 본 것은 나머지 청동시저 2벌의 본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의 같은 형태의 것이 무령왕릉의 축조시기와 꼭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하북 정현, 녕하 고원, 그리고 강서 남창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에서도 청동시저를 부장하는 예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있다면 상당한 지위의 인물이 묘주이거나 당시 황제와 관련된 유적에서 출토된다는 것은 청동숟가락이 같이 출토되는 금기나 은기와 같이 희귀한 물품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일 것으로 보았다.
한편 무령왕릉에서 당시 남조에서 유행하기 시작하였던 가위를 부장하는 대신에 청동숟가락을 선택한 것은 무령왕의 죽음을 崩으로 표현한 것 같은 백제의 독자성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며 이것은 장례절차에 있어서도 숟가락은 연도 입구에, 젓가락은 현실 입구에 두는 독특한 방식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왕비의 관 내부에서 은장도자와 함께 동발의 내부에서 출토된 청동시저는 은장도자와 함께 왕비가 귀하게 여겼던 것을 왕비의 사후에 같이 넣어둔 것으로 보았는데 중국과 한국을 통틀어 유일한 예이므로 차후의 자료 증가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시저는 삼국시대 고분에서는 가장 먼저 출토된 것으로 우리나라 식도구사 연구에 획을 긋는 것이다. 당시 주로 음식을 쪄 먹던 식탁에 새로운 식문화를 선도하게 되었으며 이어서 백제의 고분에 청동숟가락이 부장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