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마로산성의 발굴조사 성과
Ⅲ. 마로산성 출토 막새기와의 문양과 접합기법
Ⅳ. 막새기와의 문양에 대한 고찰
Ⅴ. 마로산성 막새기와의 성격
Ⅵ. 맺음말
요약
마로산성은 전남 광양시 광양읍 사곡리․용강리․죽림리 등 3개 里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208.9m의 마로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산성은 백제후기에 초축되어 마로현(광양시의 백제시대 관호)의 치소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전남지역의 다른 백제산성과 달리 통일신라시대까지 계속해서 운영되었다.
마로산성의 발굴조사 결과 성벽, 문지, 건물지, 우물지, 집수정, 수혈유구 등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 말기에 해당하는 유구가 조사되었다. 유구에 못지 않게 유물 또한 다양하고 많은 양이 출토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이 기와이다. 막새는 33종류의 수막새가 출토되었다. 수막새의 문양은 아주 특이하여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광양 지역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능형문과 원문의 막새는 서울의 몽촌토성, 풍납동토성, 석촌동 4호분 등에서 출토된다. 운문은 중국 진나라의 수막새에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한대에 이르기까지 고식기와 문양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의 운문은 간단한 배치를 이룬 반면 마로산성 운문은 복잡한 양상이다. 뿐만 아니라 자방 안에도 중앙의 연자를 두고 그 주위에 4엽의 운문을 배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초문은 만초와 같은 넝쿨풀이 뻗어 나가는 모습을 의장화 시킨 것으로 주엽은 계속 굴절되고 지엽은 파생하여 반전되고 있는 형상이다. 이러한 당초문이 자방 안에 있는 피문과 결합하여 시문된 당초파문수막새가 마로산성에서 6점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수막새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신형식이다. 연화문은 28종류에 달하며, 연화문 요소가 한결같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특이하다. 전통적인 통일 신라시기의 막새와는 1점에 불과하고 대부분 이질적인 연화문 막새와들이다.
마로산성은 6세기에 초축되어 통일신라까지 시용되었다. 그 가운데 막새와들은 주로 통일신라후기와 관련 있는 유구들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이 시기 순천의 호족은 박영규였으며, 해룡산 아래 홍안동에 응거 하고 있었다. 통일신라시대 순천의 영현은 희양현, 해읍현, 여산현등으로 이 지역의 수장 즉 승평군의 최고 책임자가 이 지역들을 통치하였을 것이다. 박영규는 견훤이 사위였으며, 고려 초기는 좌승을 역임하였다.
견훤은 서기 892년에 완산주(전주)를 도읍으로 삼고 후백제를 건국하였으며, 그의 아들 신검이 936년에 왕건에게 항복함으로써 멸망하였다. 후백제 시기와 마로산성 출토 유물들의 시기가 겹치고 있다. 그러므로 마로산성 출토 후기 유물들은 바로 후백제 시기에 제작되고 사용되었다고 보여진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통일신라 계통의 막새와들이 거의 없고 특이한 문양 요소들이 다양하게 나타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