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영산강유역토기의 변천 양상에 대해 7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이를 중심으로 영산강유역 토기의 특징, 백제화과정과 관련되는 백제 토기의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토기를 통해 영역화와 같은 문제를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정치적인 상황이 어느정도 토기에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4~6세기대 영산강유역 토기문화에 나타나는 독자성보다는 백제 관련 토기가 늘어나는 양상에 주목하여 백제의 영역화과정을 단계적으로 파악해 보았다.
영산강유역에는 4세기 후반 직구평저호 등 백제 관련 토기가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그 영향이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으므로 백제의 지배력이 전면적으로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이다. 그런데 5세기를 넘어가면 백제 관련 토기가 늘어날 뿐 아니라 일찍부터 백제 관련 토기가 나타났던 지역에서는 고분이 더 이상 조영되지 않는 양상이 나타나는 점에서 영산강유역 내부에 변화가 나타났을 뿐 아니라 백제의 영향력도 상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점에서 근초고왕의 남정 이후 충청지역과는 다른 양상으로 영산강유역에는 거점지배 등의 느슨한 간접지배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5세기 후엽부터는 개배를 비롯하여 백제 관련 기종이 더욱 늘어나고 영산강유역의 지역 양식도 등장하는데, 대형 옹관묘(U자형)가 조영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석곽묘나 석실묘가 조영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영산강유역의 토기에는 재지성향이 상당히 존속하고 석곽묘와 석실묘 또한 백제 중앙과는 달리 구조적인 차이가 있지만, 토기나 매장시설에 있어서 백제와의 관계는 좀더 밀접해진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대형 옹관묘(U자형) 중심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간접지배가 강화되어 거의 직접지배에 가까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6세기 중엽 이후에는 지방제도 등 백제 내부의 변화로 이 지역에 대한 직접지배 방식도 다른 지역과 동일하게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