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金銅으로 造成한 一光三尊佛像 1軀를 過眼한 바가 있는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충청남도 瑞山地域에서 수습되었다고 한다. 이 불상은 臺座 위에 큼직한 寶珠形光背를 갖추었고 표면에 如來立像을 本尊으로 모시고 있으며, 左․右에 脇侍菩薩像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광배 뒷면에 銘文이 음각되어 있다. 이 불상은 두 차례에 걸쳐 방문하여 실견 조사한 中國 南京市博物館의 소장품 불상들과 같은 類型과 系譜에 속한 三尊像으로 사료된다. 百濟 佛敎가 中國 南朝로부터 수용되고 이후 南朝의 梁나라와의 오랜 동안 文化交流에서 佛像 造成에서도 至大한 관계를 形成하고 있을 것임은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다. 필자도 今般 南京市 博物館에서 새로운 文朝時代의 三尊像들을 實見하기는 처음이며 따라서 그동안 몇 軀의 三國期 金銅三尊像에서 國籍을 확언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南京市 博物館 수장 金銅三尊像들과 比較考察함으로써 百濟造成의 金銅三尊像임을 밝힐 수 있었다.
甲午銘 金銅三尊佛像은 相好를 비롯하여 各部의 造成 技法 등이 세련미를 보이고 있어 삼국시대 백제 조성으로 추정되며, 造成 年代는 6世紀 후반경으로 보인다. 그런데 光背 뒷면의 銘文에서 甲午는 514年과 574年인데 6세기 후반의 造成物로 추정되어 574年(威德王 21年)의 甲午年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백제 불상으로 鄭智遠銘 金銅一光三尊佛像은 6世紀 중․후반경, 金銅菩薩三尊像은 6世紀 후반경, 金銅癸未銘 一光三尊佛像은 7世紀 전반인 623年(武王23年)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불상 실물의 실측조사, 재질의 검토 등 문화교류사 차원에서 연구되고 이 지역에서 수습된 많은 백제와의 관련 유적유물에 대한 답사 견학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