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백제 불교 금속공예의 연구 현황
3. 백제의 불사리장엄구
4. 백제의 기타 佛具
5. 맺음말
요약
백제의 불교 금속공예품들의 연구 현황과 주요 특징들을 중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폈다. 1990년대 이후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백제의 주요 불교금속공예품들은 그동안 연구되지 못했던 6~7세기의 동아시아 불교 금속공예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히 불교 조각에만 치중되어 있던 미술사 연구를 공예품의 영역에까지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기년명 자료의 등장으로 인하여 역사적 측면에서도 미술품들이 다각적으로 논의도기 시작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아직까지 이들에 대한 연구는 비교할 만한 자료가 희소한 관계로 현상에 대한 소개와 문헌과의 관계 논의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만 불교 조각 및 화상석과 같은 다양한 중국의 동시대 미술 작품들과 비교하여, 백제 양식의 독특한 특징과 성격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야할 필요가 있다. 발굴된지 10여년이 지난 백제 금동대향로와 창왕명 사리감은 비교적 국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나, 왕흥사지 및 미륵사지 출토 사리장엄구에 대해서는 일본 학계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의 학계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아직까지 발굴보고서가 완간되지 않은 미륵사지 출토 사리장엄구의 경우에는 석탑의 하부 조사까지 모두 끝나야만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으로도 미륵사지 출토 사리장엄구는 중국 수대 미술 및 일본 7~8세기 미술과의 관계가 확인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동아시아 미술사를 재고하는 데에 충분한 기여를 하고 있다.
아쉽게도 동시대의 고구려 불교 미술품은 현존예가 거의 없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어려웠으며, 조금 늦게 만들어진 신라의 분황사탑 사리장엄구나 황룡사 목탑지 사리장엄구들과도 일부 기형과 공안구 봉안 방식을 제외하면 공통점보다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특히 황룡사 목탑지 출토품의 경우에는 오랜 기간동안 재매납된 유물들과 사리공의 도난으로 인하여 구체적인 사리장엄 방식이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미륵사지 출토품과의 비교 연구가 다소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다.
아마도 백제와 신라는 중국, 특히 남조 양나라 및 수나라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서 새로운 불교 미술 양식을 받아들였으며, 중국의 새로운 조형 양식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고유한 전통을 결합하여 각각 새롭고 독자적인 불교 미술양식을 창안해냈던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출토된 백제 불교 금속공예품들은 바로 그러한 백제 미술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며, 특히 당시의 백제에서 금속 주조 및 조각 기술이 매우 발달해 있음을 알려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