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토기와 공반된 왜계 유물을 검토함으로써 안정적인 백제토기 편년 수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백제유적에서 확인되는 왜계유물은 크게, 須惠器, 甲冑, 鐵鏃으로 구분된다. 가장 이른시기의 왜계무기로는 4세기 후반-5세기 전반 대의 파주 주월리유적 출토 갑주와 5세기 전반 대의 청주 신봉동고분군 77호 토광묘 출토 철촉을 들 수 있다.
백제사에서 4세기 대는 흔히 비약적인 성장의 시기로 알려져 있다. 특히 4세기 후반 근초고왕대는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일변하여 백제는 고구려의 공세에 밀려 왜와 외교관계를 맺는다. 이 시기 출토된 파주주월리 유적 왜계 갑옷은 왜의 출병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5세기 중후반의 왜계무기는 파주 주월리유적 출토 왜계 갑옷과는 다른 해석이 되어야 한다. 이 시기 백제와 고구려의 분쟁은 거의 없었다 하여도 무방하지만,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백제에 있어서 큰 위협이었음은 틀림없다. 따라서 다른유적에 비해 많은 왜계무기가 수습된 청주 신봉동고분군 피장자 집단은 마구류의 부장으로 실전적인 기병집단을 정점으로 편성된 사회집단이었을 것으로 보이며, 백제왕권이 직면하고 있었던 고구려와의 긴장관계에 대처하는 군사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맡았을 것이다. 이를 포함해 현 충청도로의 왜계무기 유입은 대고구려대책으로 왜 왕권으로부터의 군사적 지원의 결과로 해석된다. 397년 백제는 왜국과의 우호를 맺은 이후 왜 왕권과 군사적인 교류를 바탕으로 친왜국 집단이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