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유적의 위치 및 주변환경
III. 조사내용
1. 유적-백제시대 가마 4개소(1, 2, 3, 5호)
2. 출토유물
3. 맺음말
요약
1990년 4월, 국립부여박물관에서는 약 60일에 걸쳐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에 위치한 백제시대 와도겸용요지를 발굴조사하여 백제시대 4기(1, 2, 3, 5호), 고려시대 1기(4호), 그 외 2기(6, 7호)를 확인하였다. 가마터는 행정구역상 부여군 장암면 정암리 47번지에 위치하며 3개 지구로 구분된다. 정암리 일원에는 가마터, 고분, 산성 등 백제유적들이 다수 분포하여 있고 부여와 인접하였으며 고분군, 가마터 규모로 보아 당시 비교적 큰 취락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발굴조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암리 B지구 백제시대 가마는 풍화암반층을 굴식으로 파들어가 구축한 지하식평요로서 파괴된 천정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인 소연실, 소성실, 연도 그리고 회구부 가구시설의 구멍자리가 완벽히 남아 있는 정형의 가마이다. 따라서 가마의 전체 형태와 조성방법은 물론 세부구조에서 살펴볼 때, 기와나 토기 제작에 관련된 기술사적 측면을 연구하는데 획기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 조영된 가마가 백제시대 가마와 함께 조사되어 가마발달사 연구에 하나의 자료를 추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와의 시대변천과정도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마에서 생산된 제품은 복수체제인데 수요처는 부여 군수리사지, 동남리사지이다. 또한 생산품은 기와뿐만 아니라 토기류도 함께 생산한 와도의 겸업생산체제임도 확인되었다.
가마의 개요시기는 백제시대 가마의 경우 약간의 시기차는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연화문와당 형태와 이 유물이 출토된 유적의 연대 및 토기류의 형태를 보아 6세기 후반 내지 7세기 초로 추정된다. 고려시대 가마는 회구부 상단에서 발견된 해무리굽을 가진 청자대접편을 볼 때, 12세기경으로 보인다.
정암리 가마와 거의 동일한 형태의 가마가 고대 중국, 일본에서도 확인되어 고대 동북아시아 문화교류 및 조와기술사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제특징을 감안할 때, 부여 정암리 일대는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가마가 조영된 지역이며 아직도 미조사된 가마터가 유존하여 계속적인 발굴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