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書紀》에 의하면 일본 서부지역의 百濟系山城들은 백제멸망 직후(663), 백제인들이 일본에 건너와 축성하였다고 한다. 이는 都城禮制의 유사성을 들 수 있다. 百濟末期泗沘都城의 體制는 平地城(王宮+羅(郭)城) +山城(丘陵性山城+高地性山城)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都城體制는 中期熊津都城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초기 漢城時代에도 이와 비슷한 유형의 체제로 생각되는데 일본 大宰府都城도 이와 같은 體制로 축조되었다. 百濟扶蘇山城이 丘陵性山城의 複合式山城인데 반해 大野城은 高地性山城의 複合式山城이라고 하는 점과, 규모에 있어서 大野城이 扶蘇山城보다 3배 정도 크다고 하는 점 이외에는 지형·축성기법·성의 기능 등에서 大宰府都城은 유사함을 보여준다. 다만 羅城의 경우에는 羅城(郭) 성격을 갖는 水城이 扶餘 羅城과는 달리 도성 서북부의 취약지점에 축조된 점이 다르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木樋을 이용한 통수방법 등 한 단계 발전된 기법이며 版築技法이나 石築技法, 水口등의 축성기법은 백제 그대로이다. 다만 大野城에서는 군사적 목적의 건물지만 확인되어 성의 기능이 군사적인 것에 한정되나 扶蘇山城은 園林역할까지 겸하였으리라고 추정된다.
도성의 행정체제는 여러 사료에서처럼 五部制度를 채택하고 있던데 반해 大宰府都城은 일부 학자에 의해 條坊制로 추정된다. 일본의 백제계산성이 모두 包穀型의 대형산성이나 鞠智城만은 百濟初期河南慰禮城으로 비정되고 있는 夢村土城과 같은 구릉성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한 점, 백제의 지명이나 五部制度의 명칭 등을 답습한 흔적, 百濟系古墳인 江田船山古墳이 있어 재평가해준다. 또 金田城에 부설된 雉城도 백제와 新羅山城에서 그 원류를 찾고 高句麗山城에서도 이에 선행해서 雉城이 부설되었다. 한편 일본에서 神籠石系山城이라고 불리는 산성은 축성시기와 축조자가 불확실하지만 그 분포지역이 일본 서부지방에 있는 백제계산성과 동일하다는 점과 지형의 선택·규모·판축과 축성기법·문지 및 수구처리 등의 방법에 있어서 백제산성, 나아가서는 韓國古代山城과 별 차이가 없다. 백제계산성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 성 내부에서 유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한국 고대산성에서는 테뫼型山城이 주류를 이루나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산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백제계 이주민이나 본거지 주민들이 방어용 목적으로 大形의 包穀型山城만을 축조한 것으로 神籠石系山城이라고 불리는 韓國系山城은 百濟系山城과 비슷한 시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