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
Ⅱ. 佛足碑石歌와 百濟國音表記와의 관계
Ⅲ. 佛足碑石歌의 形式과 三句六名과의 관계
요약
약사사는 백제가 멸망한 뒤 20년 후인 680년에 건립되기 시작한 사찰로 백제의 왕족과 유민, 전대부터 도일했던 학자, 승려, 공인들에 의해 창건되어 주목되며 그 불족석비의 노래가 또 관심을 끈다.
약사사약기를 비롯한 일본서기 등의 문헌적 기록을 상고해보면 나라의 약사사도 백제의 왕족과 공인들로 이루어졌고 그 불족석비의 양식이나 표기방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몇 번의 조사를 통해 현대식만요가나를 사용한 석가문자를 살핀 결과 음차자가 공통적이면서 그 용례가 많은 것에 주목이 되는데 국내 학자들이 조사한 백제어연구나 차용자표기례를 보면 일본 오십음도 거의가 대응내지는 동일음운체로 나타남을 본다. 이는 분명 삼국 특히 백제에서 쓰이던 한자차용법이 그 방법과 함께 음운형상이나 체계도 함께 일본의 비조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심증을 굳혀준다.
불족석가의 형식이 일본고유의 575조도 아니고 57577조도 아니며 대륙으로부터 들어온 75조도 아닌 특이한 형식으로 한 수의 수자수가 67, 67, 88자를 기본으로 하는 형태이다. 3음 1어씩 두 마디가 1구로 되고 그런 구가 6구로 1수를 이루어 하나의 가사를 이루고 있다. 이를 일러서 3읍으로 된 구절이 6구라고 해도 되고 3음 더하기 3음으로 된 6자의 한 구라 해도 무방하겠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