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한성기에 축조된 석촌동 즙석봉토분에서 “櫓”처럼 생긴 목제품이 출토된 바 있다. 목관에 사용된 관재와 함께 수습되었으며 이 고분은 출토된 토기로 보아 3세기 중엽 4세기 초반으로 추정되었다. 이 목제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검토된 바 없고 이의 비교자료 또한 백제고분에서 확인된 바 없다.
그런데 이와 흡사하게 생긴 노형 목제품이 중국 신강성의 소하묘 및 남북조시대의 벽화, 그리고 일본 고분시대의 무덤 주변에서 확인되어 좋은 비교자료가 되고 있다. 중국의 소하묘는 기원전 2,000∼1,000년 무렵의 것으로 노형 목제품은 남성의 목관 후면에서 조사되었다. 반면, 중국 남북조시대의 노형 목제품은 묘주의 생전 위신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노형목제품은 남북조시대의 것과 같이 생전의 위신재로 사용되다 사후 무덤의 장엄구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중국 남북조 및 일본의 사례를 통해볼 때 석촌동 즙석봉토분에서 수습된 노형 목제품은 피장자의 생전에 위신재로 사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다만, 그 동안의 백제고분에서 피장자의 신분을 밝혀줄 수 있는 묘지가 거의 확인되지 않았음을 전제할 때 묘비로의 기능도 함축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