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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미술

나주 신촌리 금동관의 불교적 상징과 마한사회

  • 분류 고고·미술 > 유물
  • 권호수 제55집
  • 저자 이경화
  • 발행일 2014년 6월
  • 게재지 호남문화연구
  • 발행처 호남학연구원

목차

Ⅰ. 머리말
Ⅱ. 백제 금동관의 경계
Ⅲ. 신촌리 금동관의 불교적 상징
Ⅳ. 신촌리 금동관과 마한사회의 백제화
Ⅴ. 맺음말

요약

이 논문은 신촌리 금동관의 불교적 조형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 백 제와 마한의 정치적 관계를 고려하여 그 의미를 마한사회의 정체성과 연 결하여 보았다. 마한사회 특유의 대형 옹관묘에서 출토된 신촌리 금동 관은 불교 상징인 연꽃이 어떠한 질서에 의해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한은 백제에 일시에 정복되지 않고 점차적으로 해체되었으며, 특히 신 촌리 금동관이 출토된 옹관의 제작시기에 해당하는 5세기 후반부터 6세 기 초반까지는 백제 규율 아래 마한 후기 세력으로 지탱하였다. 신촌리 금동관은 불교문양으로 전개되는 백제 금동관의 경계에 있으면서도 백제 금동관 전통에서 이질적인 불교 모티프가 이른 시기에 시도된 독창적인 조형이다. 신촌리 금동관의 불교 모티프는 대관의 팔메트연화문, 3개 모둠의 연꽃, 그리고 관모의 12개 연꽃으로 주로 연꽃과 상징 수의 관점에서 살펴진다.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영혼(새로운 삶)이 연꽃을 통해 화생한다. 불교모티프를 통해 신촌리 금동관은 정토왕생에 대한 바람을 담은 장례용으로 추정된다. 신촌리 금동관이 마한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면 백제와 정치적 상하관계인 마한사회의 수장이 불교모티프의 독특한 금동관을 쓰고 그들 고유의 옹관묘 안에 안장되었다는 점은 고대 사회의 중요한 변화를 상기시킨다. 즉 고대국가를 이루지 못한 마한은 백제화되었고 필연적으로 그 문화적인 정체성은 잠재 의식 속으로 함장(含藏 )되었다. 따라서 신촌리 금동관은 마한사회의 힘을 보여 주는 매우 이른 시기 불교적인 독창적 조형이자 백제 금동관 흐름의 징후이고 후기 마한사회의 백제화를 상기시키는 매우 중요한 유산 중 하나이다. (필자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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