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首府’의 用例와 그 意味
Ⅲ. ‘首府’ 銘瓦唐製論의 檢證
Ⅳ. 왕궁평성의 성격에 대한 논의 검증
Ⅴ. 맺음말
요약
익산 천도론의 핵심 물적 증거가 부여와 익산 왕궁 유적에서만 출토된 ‘首府’ 銘瓦이다. 여기서 ‘首府’는 首都의 뜻으로 해석해 왔다. 그런데 최근 ‘首府’ 銘瓦의 ‘首府’는 1697년에 간행된 중국 地方志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그 의미는 ‘속국 및 식 민지 최고 정부기구 소재지’이므로 首都와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반면 사비성에 설치된 唐나라의 軍政 機構인 熊津都督府와 관련 지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백제 익산 천도설의 유력한 물증의 하나인 ‘首府’ 銘瓦는 의미를 급속히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따르기 어렵다. 첫째, 당시로부터 무려 1천년 후의 용례를 소급해서 적용할 수 있는가 이다. 둘째, ‘首府’는 한국측 문헌에서는 그 용례가 1469년에 이미 보이고 있다. 그것도 무려 228년 전에 이미 중국보다 조선에서 먼저 사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용례를 한국 관련 자료에 일방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셋째, ‘首府’는 당시 조선에서 가장 그 이른 용례로서는 ‘한 道의 首府’ 즉 監營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렇듯 중국보다 일찍 확인된 한국에서의 ‘首府’는 중국에서의 용례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부소산성에서 출토된 ‘首府’ 銘瓦를 ‘大唐’ 銘瓦와 엮어서 唐製로 간주했다. 그러나 ‘首府’ 銘瓦는 ‘大 唐’ 銘瓦와는 달리 백제 유물과 함께 출토되었다. 더욱이 익산 왕궁평성에서 출토된 ‘首府’ 銘瓦 역시 백제 전형 의 圓形 印刻瓦와 함께 출토되고 있다. 왕궁평성에서 唐製 유물이 단 한 점도 출토된 바 없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