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7세기대 백제 중앙과 지방의 기와
Ⅲ. 7세기대 백제 기와의 특징과 원류
Ⅳ. 맺음말-일본과의 관련성을 덧붙여
요약
이 글은 7세기대 백제 기와의 변화상과 특징을 정리하고, 그 원류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Ⅱ장에서는 부여·익산·공주 등 소위 중심지에서 출토된 와당과 지방에서 출토된 와당 및 평기와에 대해 검토하였다. 백제의 중심지 기와들은 왕궁이나 관청 지역에서 출토되는 기와(1-A그룹)와 6세기대에 건립된 사원의 보수용 와당으로 사용된 기와(1-B그룹), 7세기대에 새로 창건된 사원에 사용된 와당(2그룹)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방에서 출토된 기와들은 사원에서 출토된 소수의 와당을 비롯하여 내면에 승석문이 있는 평기와, 인각와라 불리는 특징적인 문자기와 등이 있다. 그중 1-A그룹은 6세기대와의 연속성이 강하고, 1-B그룹과 2그룹은 연판과 중방의 형태, 연자의 수, 제작기법 등에서 6세기대와는 약간 차이를 보인다. 지방에서 출토된 와당의 경우 처음에는 중심지 와당과 유사하지만 점차 변형된 형태를 보이는데 이는 지방에서도 자체적인 생산체제를 갖추어 가는 것을 반영한다. Ⅲ장에서는 7세기대 백제 기와의 특징을 정리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영향에 대해 검토하였다. 그 결과 7세기 백제 기와 중에서 복판연화문 와당이나 자엽의 숫자가 변화하는 것, 단판 안에 당초문 등을 시문하여 장식성을 강조하는 것들은 중국 隋唐代 기와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또 중방의 형태나 연자의 변화, 珠文의 채택, 새로운 형식의 와당과 수키와 접합 기술, 녹유 기와의 생산, 枷型의 사용 등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와당 뒷면에 타날흔이 나타나는 것이나 竹狀模骨을 이용한 평기와가 제작되는 것은 신라나 고구려의 영향일 가능성이 있다. 7세기대 백제 기와들은 일본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는데 백제 중앙과 일본 중앙 간 교류뿐 아니라 지방 사이의 교류도 있었을 것이다. 또 백제 멸망 이후에는 火炎文瓦當이나 水切瓦 등에서 백제 유민의 영향이 제기될 수 있지만 湖東式瓦當이나 竹狀模骨을 이용한 기와들은 삼국 중 어느 계통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