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시대의 백제토기의 제작기법과 변천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토기의 성형은 1~3차에 걸쳐 완성되었고, 윤적법, 권상법, 수날법이 전부 사용되었으며, 일부 기종에서는 틀에 의한 제작도 확인되었다. 틀에 의한 제작은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부여지방과 익산지방에서 발견된 회색계토기가 율령제에 의해 제작된 최상품이다. 제작기술의 발전에 의한 대량생산은 토기생산의 분업화과정을 거쳐 생산유통과정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토기의 소성은 겹쳐 쌓아 진행한 방법이 몇 가지 기종에서 출현하였고, 부여 관북리 추정왕궁지 출토 회색계토기가 도자기와 같은 燒臺(소대)를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높고, 영산강 유역의 나주 복암리 고분군에서도 토기소성에 소대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다.
중앙정부의 직접지배하에 만들어진 토기가 공급된 지역은 부여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북으로는 서산지방, 남쪽으로는 익산지방에 미쳤다고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