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서울의 아단성과 장한성에 대하여 고찰할 것이다. 아차산 꼭대기에 남아있는 토성은 아단산성이란 이름으로 사적 2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뚜렷하게 삼국시대 백제토성을 간직한 이 산을 아차산이라 호칭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일직이 나타나는데 그 전후에 있어 아단산이라 기명한 문헌도 적지 않다.
고구려의 장수왕이 475년 아단성을 점령한 이래 한강유역 북성이 고구려의 영향권에 들어 있던 것을 알 수 있으나 한편 일찍부터 백제의 영토였던 한강과 임진강 사이의 이 일대를 온통 고구려의 일사불란한 완전통치지역으로 보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후 북한산주와 패강에서 신라와 고구려의 영역 전쟁이 극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중에서도 북한산성 및 아단성을 안고있는 북한산주야 말로 전초적인 군사요충으로 전쟁 수행상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 등 문헌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아차산 서쪽 기슭 넓은 들판이던 장한평이라고 부르던 예부터의 지명이 있었다. 또 대동여지도에 분명하게 나타나 보이는 아차산 위의 2곳의 산성 표식 등이 있다. 즉, 아차산 동봉 위에 백제시대 토성이 있고 그 북쪽으로 뻗은 산마루에 신라시대 장한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증자료를 통해 장한성의 존재를 더욱 확연히 밝힐 수 있었다. 장한성의 존재로 인하여 현재 사적지정 및 그 영역이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