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유적은 과거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성시되거나 성역화된 장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까지 제사유적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학술적으로 발굴된 적은 거의 없다. 단지 선사시대에 속하는 제사유적으로 울주 반구대와 천전리(국보 147호), 고령 양전동 (보물 605호), 홍해 칠포리, 포항 인비동, 영천 봉수리, 영주 가홍리, 여수 오림동과 남원 대곡리 등의 암각화를 들 수 있겠다. 그리고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는 오늘날에도 지방에 많이 남아 있는 서낭당, 장승이나 당산 등 이러한 제사유적에 해당한다 하겠다. 그런데 제사유적의 기능은 國泰民安을 위한 국가의 신이나 조상을 제사하는 社稷이나 宗廟의 기능에서부터, 마을 주민의 무병과 안녕, 또는 多産, 豐饒나 豐漁를 기원하는 기능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또 기록에는 소도와 같은 장소도 전한다. 이는 우리나라 초기철기시대(기원전 300년)부터 정치적 우두머리인 族長과 분리된 전문직의 제사장이 다스리는 신성한 장소이며 동시에 죄인의 피신처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최근 발굴된 부여 능산리의 건물지는 금동용봉봉래산향로가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 향로의 출토상항은 사비시대(538-660년)백제의 멸망과 관련이 있다. 그만큼 이 향로와 건물지와의 관계는 중요하다 하겠다. 최근의 발굴은 이 건물지가 바로 앞에 있는 능산리고분군(사적 14호)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다시 말해 이 건물은 능들을 수호하거나 제사지내는 곳, 또는 나라의 사직터일 가능성이 많아진 것이다. 건물의 배치도 즙안현 국내성밖에서 발굴된 고국양왕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대자의 제사유적과 유사하다. 백제의 출자가 고구려에서부터인 것은 이미 건국신화나 역사적 사실에서 잘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고고학적 유물로도 입증이 된다. 아직 한반도에서는 백제시대의 제사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공주 송산리, 부안 죽막동과 부여 능산리 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유적이 발견되어 연구가 진척된다면, 한국과 관련된 오끼노시마 제사유적의 중요성과 더불어 국가의 종묘나 사직과 같은 중요한 정신적 의미가 담긴 제사유적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