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序
II. 한강유역 기층문화의 전개
1. 지석묘사회
2. 세형동검기 사회
3. 한·예계 사회
III. 백제의 국가형성 시기
IV. 백제의 성장과정
V. 結
요약
본고는 한강유역에서의 백제의 국가형성 시기 및 그 성장과정을 검토하기 위하여 준비하였다. 먼저 국가단계의 백제가 한강유역의 고고학적인 편년상 어디쯤에 자리매김 될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하기 위하여 지석묘사회 이래의 여러 선행 기층문화에 대한 검토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지석묘사회는 한강유역 최초의 정착농경사회로서 그 사회 성격은 시간적인 추이에 따라 부계씨족-세대공동체의 과도단계의 평등사회로부터 농경공동체의 족장사회에 이르기까지로 이해될 수 있었다. 다음의 세형동검기 사회는 전국연과 고조선의 군사적인 충돌과정에서 발생한 유이민들의 남하로 인해 토착 지석묘사회가 재편된 것으로서 고고학적으로는 점토대토기와 세형동검 등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리고 이 사회는 문헌자료에 의하면 한의 사회로서 당시 진국으로 지칭되었던 정치체가 존재하던 사회이다. 그러나 여기의 국은 아직 국가단계의 정치체는 아니었다. 한강유역의 원삼국문화는 예계종족집단의 문화인 중도유형문화와 마한의 문화인 중서부지방의 원삼국문화가 병존하고 있었으며 이와 별도로 기원전후한 시점에 남하한 백제의 건국세력으로 보이는 집단의 문화가 석촌동 고분군의 이른 시기 토광목관묘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이미 내부적으로 사회분화가 진행된 상태였으나 아직 국가단계의 정치체는 출현하지 못하였는데 그 이면에는 낙랑 등의 중국군현의 통제력이 분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3세기 중후반-말경에는 대형봉토분 및 성곽의 출현과 더불어 한강유역에는 국가단계의 정치체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백제이다. 이 무렵에는 중국군현이 유명무실할 정도로 그 장악력을 잃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한편, 백제 건국세력의 출자문제, 왕실교대론 또는 정복국가론과 관련하여 자주 거론되어 온 석촌동 기단식적석총은 그 출현이 4세기 후반경으로 비정되어 백제의 국가형성과는 무관함이 드러났다. 한편 기단식적석총 출현에 대한 이러한 연대관은 백제왕실 교대론의 고고학적인 근거로 이해되기에 적합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요구되는 사안이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