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흥사 사리장엄구는 백제 후기에 해당하는 사비시대의 금공 기술의 발전양상이 잘 보여주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백제 문물의 편년연구에도 중요한 기준 자료가 된다.
5세기를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개시된 백제의 금공문화는 금속제의 장신구를 중심으로 백제적인 양식을 나타낸다. 한성이 함락되어 약간 단절이 있었으나 무령왕대가 되어 다시 원래의 궤도에 올랐다. 서력 538년의 사비 천도 이후에 박장의 풍속이 유행하고 유적 발굴에서도 금공품의 출토예가 급속하게 감소한다. 그러나 왕흥사의 조사 결과에서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와 같이 6세기 후반 무렵에도 백제의 금공문화는 여전히 발전하였다. 특히 銅函(동함)은 주조 후 고속의 회전력을 이용하여 정형한 것으로 은병과 금병은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단조한 후 용접하여 만든 것이다. 크기가 아주 작은 용기임에도 불구하고 정교함이 보이고, 이 시대 백제 금공문화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수작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