はじめに (머리말)
調査遺構 (조사유구)
出土百濟木簡の判読と意味
(조사유구 출토 백제목간의 판독과 의미)
墨書裝飾文木製遺物(묵서장식문 목제 유물)
その他の文字關連遺物 (그 외의 문자 관련 유물)
おわりに (맺음말)
요약
복암리 유적의 집수장으로 추정되는 수혈 유구에서는 목간과 목간류로 분류되는 목제유물 65점이 출토되었다. 그 중 세 점의 목간과 두 점의 태극문양 등 墨痕(묵흔)이 있는 목제품은 7세기대의 나주 복암리 일대에 있던 상급 관청과 그 주변에 있던 군현 등의 보고와 명령 등 의지전달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7세기 대 나주지역의 지방행정의 한 면을 볼 수 있다.
우선 1호 수혈이라는 유구에서 출토된 유물은 목간에 기록되어 있는 「庚午」라는 간지에 의하면 61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되어 이 목간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영산강 고대 문화권의 중심지인 나주에서 목간이 출토 된 것은 백제 도성이 아닌 지방에서 처음 대량으로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둘째, 한국에서 최대・최장의 목간, 封緘(봉함)목간, 백제에서 초기 촌락이름의 확인과 촌락문서의 발견, 백제 토지경작의 형성과 토지단위 및 단위 당 수확량, 지방에서 처음 확인된 관등 이름이 적힌 목간 등은 목간 연구의 진전은 물론 한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
셋째, 보고용 기록으로 문서목간, 습자목간, 면목간 등과 함께 이두식 표현이 사용된 목간이 확인된 것은 국내 출토 목간 연구와 함께 국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술적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