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列島에는 舊石器時代, 繩文時代, 彌生時代마다 각각 신앙관계의 유적,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3세기 이후는 古墳時代라고 부르며 일본열도에서도 厚葬의 풍습이 가장 유행하고 대형의 분묘가 만들어졌다. 이 시대가 되면 신앙관계의 유적 중 神을 제사지냈던 유적이 다른 유적과는 독립되어 고찰되어지고 있는 듯하다. 요컨대 자연에 있는 山岳, 岩石, 島嶼, 樹木, 井泉, 池沼, 河川, 海洋 등에 있는 신, 또는 憑依된 신 등이 제사지내졌다. 이들은 太陽神, 水神, 火神, 祖先神, 峠神, 墳神, 風神, 雨神 등으로 분별되며 意識的으로 제사가 지내져 유적을 형성한다. 이들 유적은 集落과 住居, 墳墓, 生産遺蹟과는 구분된다. 그리고 최근에는 繩文時代와 彌生時代에도 같은 형태의 유적이 지적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 古墳時代와 같이 상세히 복원고찰되지는 목하고 있다. 竹幕洞 祭祀遺蹟은 지금까지 日本列島에서 알려진 제사유적과 비교하면 규모가 커다란 유적이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石製模造品이라고 하는 것이 일본열도와 가까운 관계를 살필 수 있게는 하나 土器를 비롯해 鐵製品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韓半島 獨自의 것이 눈에 띈다. 馬具는 宗像沖ノ島에 있기는 하지만 일본열도 제사유적의 보편적인 예는 아니고 오히려 일본의 물과 말의 관계로부터 오는 土馬, 石製馬形, 鐵製馬形 등의 유물과의 對應이 고려되는 듯이 생각된다. 보고서에서도 서술한 바와 같이 海上交通安全, 豊漁, 기타 많은 기원을 담은 제사가 행해졌을 것이다. 제사는 이 땅에서 오랫동안 행하여져 왔지만 제사유물이 가장 많고 가장 성행하였던 것은 5세기 전반이라고 생각된다. 이때 백제는 漢城을 王都로 한 가장 융성하였던 시기이며 중국대륙과의 국교도 南朝만이 北朝와도 맺고 있었다. 倭도 五王의 시대로 불리워지며 南朝의 宋과 冊封關係를 맺었던 시기이다. 백제와의 관계도 친밀하며 왜의 선박도 백제부근의 항구에 정박하였다고 생각된다. 이 邊山半島 주변의 海上交通이 융성하였다고 한다면 당시부터 유명한 靈地였던 이 땅에서 在地의 사람도 제사를 지내고 백제의 王都로부터 온 사람도 제사를 행하고 때로는 일본열도의 東方으로부터 온 사람도 여기서 항해의 안전, 荒天바다의 고요함, 無事를 비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 實現하지는 못하였지만 석제모조품은 日本列島製의 물건이 아닐까 생각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