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緖
Ⅱ. 泗沘都城에 대한 地表調査및 發掘調査資料
Ⅲ. 泗沘都城에 대한 綜合的考察
Ⅳ. 結
요약
扶蘇山城은 東門址발굴에서 수습된 ‘大通’銘瓦片(527∼528)을 근거로 해서 생각해 볼 때 泗沘遷都이전에 扶蘇山城의 외부를 형성하고 있는 성벽이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고, 이 부근에 축조된 판축기법과 南門址부근에 축조된 판축기법은 동일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어 扶蘇山城의 2.2㎞에 달하는 성벽은 동일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軍倉址所在테뫼式山城의 서쪽 성벽의 단면 조사에서도 수축의 흔적이 없어 동일시기에 축성된 것으로 판단되어 扶蘇山城은 천도 이전에 이미 외곽성벽을 축조한 후 추정 테뫼式山城을 二區로 분리하여 사용한 것 같다. 扶蘇山城의 축조목적은 軍倉址所在테뫼式山城內 건물지와 東門址부근의 조사 결과를 감안해 볼 때 王室의 주요 물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했던 山城이 아닌가 하며, 寺址도 있는 것으로 보아 王室과 귀족들의 願堂寺刹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遊園과 秘苑, 그리고 望樓등 다목적으로 사용된 山城으로 판단된다.
靑山城의 二重내지 三重으로 보이는 土築은 아마도 建物址로 인해서 나타난 것이 토축성벽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며, 북쪽의 羅城과 연접한 土築은 羅城축조와 관련시키는데 중요자료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발굴조사에 기대를 한다.
扶蘇山城 안에서 王宮址遺構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까지 조사보고된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羅城內에 中央으로 약간 서편에 위치하고 있는 현 부여박물관 부근이 가장 유력하다. 南北大路의 일부가 확인되며 城의 북쪽 한계선도 확인된다.
五部制度문제는 문헌자료와 출토유물에서 제시한 자료에 입각해서 필자는 지형과 東西南北의 方向에 따라 자연부락단위로 배치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사비도성은 王宮을 중심으로 內城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羅城 즉 外廓城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배후의 扶蘇山에 山城을 배치하고, 都城과 인접해서는 靑馬山城을 배치하였다. 泗沘都城의 外廓에는 石城山城을 비롯해서 浮山城, 蔚山城, 甑山城, 乾支山城 등이 배치되어 사비도성의 방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백제 사비도성은 南朝建康城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견해도 있다. 建康城에 있었던 ‘巷’名도 사비도성에 관한 사료가 있다. 그러나 王宮(內城)의 배치를 비롯해서 佛敎와 儒敎의 北朝文化가 백제 사비시대에 유입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중국 北朝의 文化가 南朝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보다도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은 高句麗長安城인 것 같다. 자연지세를 이용해서 內城과 外城및 배후에 淸岩里山城을 배치한 점이라든지 五部制度의 유사한 점, 그리고 版築技法과 廻廊시설의 수용이 百濟가 初期 漢城時代부터 수용해 일관성있게 시공해 내려온 것 같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