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혈에서 확인된 엄청난 양의 곡식과 토기는 貢獻用 祭物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은 일개인 차원의 祈願이 아니라, 구룡평야를 끼고 있는 이 지역 정치집단 차원의 기원행위에 의해 형성된 제사유적으로 판단된다. 한편으로는 산정에 위치하는 공동제의 장소로서의 제당을 생각해 보게 된다.
무기류보다 철겸․철부와 같은 농공구의 비중이 높은 점은 평야로 둘러싸인 유적 조성 집단의 농경생업과 관련된 주변환경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제사유적이 조성되던 시기는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곡물의 增産이 요구되던 시기였던 것으로 보이며, 사회적 발전을 통하여 얻어낸 잉여생산력을 바탕으로 단위 정치집단 간의 통합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에 해당되며, 정치집단의 형성과 통합에는 원시신앙이 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시간적 추이에 따른 마한과 백제의 공간적 범위를 쉽게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삼국지 위서동이전』 한조에 전하는 마한인의 제사습속에 관한 기록을 참고할 수 있다. 그들은 5월 파종기와 10월 추수기에 농경신에 대한 제사를 행하였으며, 읍락에서 제사 주제자를 뽑아 천군이라 이르고 천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농경의례로서의 천신제사를 통하여 내적으로 정치적 구심점을 가지며 주민의 결속력을 더해 가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며, 철정의 존재는 활발한 대내외적인 교류관계를 통하여 정치적이며 영역적인 범위를 넓혀가던 변혁기의 사회상을 시사하는 듯하다.
특히 산상 제사유적에서 발견된 유구와 출토유물을 통하여 고대인의 원시신앙과 관념세계를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향후 관련 제사유적 자료의 증가와 더불어 이 지역 정치집단의 사회구조 이해와 정신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필자 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