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부여지역 백제사지를 검토하였다. 이를 전제로 공주지역의 전 백제사지를 검토해 볼 때 많은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공주지역의 백제사지와 부여지역의 백제사지가 똑같은 입지, 배치, 방향, 기단양식 등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사지가 종교성을 바탕으로 정형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공주지역의 전 백제사지에 대한 편년을 재조정하여야 함이 옳지 않을까 싶다. 특히 전 주미사지, 동혈사지, 서혈사지, 남혈사지 등은 그동안 백제시대의 혈사로 오랫동안 불리워졌음도 사실이다. 이들 사지는 시․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것들로 확인되었고, 남북을 장축으로 한 평지가람의 1탑 1금당식이 아닌 中庭 혹은 築臺를 중심으로 한 산지가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사지는 아니지만 공주 공산성내의 임유각지에서 확인된 塼土混築基壇의 경우 사비지역에서 주로 확인된 와적기단과 건축기법상 큰 차이가 없는 기단형식임을 살필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 전토혼축기단이 사비도읍기의 부여 및 보령지역에 있어 와적기단이나 전석혼축기단으로 변화 발전한 것임도 조심스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아울러 대통사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흥륜사가 웅진도읍기인 성왕대에 창건된 가람이었음을 추정하였다. 특히 일부에서는 흥륜사에 대해 신라의 사찰로 추정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금번에 확인한 『삼국유사』의 기록을 통해 백제의 사찰임이 분명함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일본서기』의 기록에서처럼 백제의 위덕왕대에 이미 法師寺와 尼寺가 존재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는데 이는 현재 일본에서 발굴조사된 많은 國分寺나 國分尼寺와 비교되는 二寺制라 할 수 있겠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