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序言
II. 文獻資料
III. 遺蹟
1. 隍
2. 防柵
3. 土城
4. 石城
IV. 結語
요약
검단리유적처럼 구릉위에 위치한 취락의 둘레에 판 방어용 환호는 청동기시대에 이미 출현하였다. 환호유적은 같은 청동기시대인 송국리유적과 금관가야유적인 봉황대유적에서도 확인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까지도 사용된 초보적인 방어시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 방어호도 원삼국시대의 유적인 양산패총유적에서 확인되었는데 이른시기부터 출현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해자도 운성리토성의 예로보아 기원전 2세기경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防柵도 송국리유적처럼 청동기시대에 이미 출현하였는데 송국리유적은 木柱간의 간격이 180cm 내외인 一列木柵이었다. 구조면에서 木柱와의 간격이 없어 延接한 一列木柵보다는 견고성이 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防柵에는 여러 종류가 문헌에 나오나 이중 녹각성은 일본의 요시노가리유적의 예로 보아 이른 시기부터 출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하여튼 방책은 삼국시대 이전에는 많이 만들어 진 것 같으나 삼국시대에 들어 석성과 토성이 주류를 이루게 되자 자연 이들에 밀려 보조적인 수단으로 적은 수가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러나 그 명맥은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진다. 土城은 검단리유적처럼 청동기시대에 취락성으로 구릉성이 출현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남한지역에서 방어만을 목적으로 한 산성이 어느 시기에 출현하였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평지성중 방형토성은 중국성곽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부정형 평지성도 중국성곽과 관계가 있는 듯하다. 또한 이시기에 남한지역에서 석성이 출현하였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