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1.‘83년도 百濟 河南慰禮城으로 비정해서 보고한 夢村土城의 보고개요
Ⅱ-2.‘83년도 百濟 漢山․漢山城으로 비정해서 보고한 南漢城과 春宮里․二聖山城 보고개요
Ⅲ-1.‘84년도 이후에 조사보고 된 夢村土城에 대한 발굴조사 자료
Ⅲ-2.‘84년도 이후에 조사보고 된 二聖山城發掘조사 보고자료
Ⅳ. 지표조사보고와 발굴조사보고와의 비교고찰
Ⅴ. 맺음말
요약
첫째로 위례성 비정문제이다. 위례성은 하북의 위례성과 하남위례성이 있다. 하북위례성의 위치비정은 강북의 中浪川 부근설에 잠정 동의하고 앞으로의 조사에 기대한다. 하남위례성의 비정에 대해서는 지표조사때 밝힌 바대로 현재의 몽촌토성임을 재확인한다. 지표조사때 밝혀진 방어시설인 판축의 토성과 백제토기편의 출토, 같은 시기의 고분군 등이 몽촌토성의 성격을 충분하게 방증해 주고 있다. 더욱이 발굴을 통해서 얻어진 성의 목책시설, 垓字시설, 외성의 존재와 출토유물은 이 성의 존립연대와 토성의 성격을 입증해 주고 있다. 성내의 발굴을 통해서 성안에는 주거지와 저장공 등이 조사되었을 뿐 왕궁지에 걸맞는 유적지는 발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성이 熊津城(公山城)이나 泗沘城(扶蘇山城)과 마찬가지로 성밖에 왕궁과 관아, 민가 등의 시설물이 배치되고 있었음을 시사해 주는 중요자료라고 하겠다. 둘째로 漢山과 漢城別宮의 위치비정 문제이다. 필자는 지표조사보고에서 한성을 남한산성이 위치하고 있는 (南)漢山에 비정하고 한성별궁은 이성산성 아래에 있는 춘궁리 일대에 비정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이성산성에 있는 시설물은 통일신라시대 시설물들로서 출토유물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지표조사때 신라토기편이 주로 수습되고 있었음을 밝힌 바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발굴조사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이나 부대시설물이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판명되어 백제시대의 한성별궁으로 보는 필자의 의견이 크게 빗나간 바 있다. 실재 유물이 입증하고 있으므로 반론의 여지가 없으나 몽촌토성과 백제고분군이 존재하고 있는 江南 일대가 백제 한성시대의 근거지라고 할진대 한산의 위치는 그보다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南)漢山 일대를 벗어나지 아니하리라고 믿는다. 漢城이라고 하는 명칭도 漢水(江)와 한산을 중심으로 해서 폭넓게 사용되었으리라고 생각하며, 침류왕의 원자가 태어났다고 하는 한성별궁과 근초고왕이 도읍을 한산으로 옮긴 후에 王子가 태어난 한성별궁이므로 역시 현재의 남한산성이 위치하고 있는 남한산 부근에서 찾아보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