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에서 출토된 6개의 잔은 얼핏 보기에 중국, 일본, 우리나라 등 수백년동안 술잔이나 찻잔에 나타나는 가장 일반적인 형식으로 오늘날까지 사용된다. 이 6개의 잔들의 하한은 529년 무덤이 밀폐된 때이며 이는 왕 자신이 구입했거나 삼상차남이 제시했던 것처럼 양조정에서 왕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 조의품으로 백제 조정에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잔들은 중국에서 발굴된 것들과 양식적으로 비교할 때, 남방에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진과 남조의 많은 무덤들에서 발견되었고 절강지방의 소흥의 남조유적에서 발견된 잔은 특히 굽이 마치 평저처럼 보이는 것과 뒤집어 봤을 때 3개의 받침이 지탱하는 것, 형태, 크기, 특징적 모습도 무령왕릉 출토 잔들과 놀랄만큼 흡사하다. 더욱이 남조 무덤양식과 무령왕릉 무덤양식이 같다는 것, 6개 잔 외에도 또 다른 3점의 도자기 유물 역시 남조에서 제작, 무령왕릉 내에서 발견된 철화 꾸러미가 양에서 제작된 것 역시 남방유래설을 뒷받침 한다.
무령왕릉 발굴보고서에는 그 잔들을 청자라고 보고했으며 삼상차남도 이를 청자로 보려고 한다. 그러나 이 분야의 저명한 김원룡, 정양모 같은 학자 등은 이를 백자로 보고 있다. 청자와 백색 석기의 차이는 태토와 유약의 물리적 특성에 있다. 태토의 빛깔은 희며 부분적으로 엷은 황색을 띠고있어 태토 안에 소량의 산화철이 함유된 것으로 추측되며 이러한 백토만이 고화도에서도 이 정도 백색을 낼 수 있다. 유약은 아랫부분에 뭉쳐 약간 어둡게 되어 옅은 녹색을 띠는 것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무색이다. 이는 유약 안에 함유된 산화철이 환원상태에서 연소되어 생긴 결과이다. 따라서 백자로 보고자 한다. 만약 이 잔들이 백자라고 한다면 중국에서 백유석기라고 알려진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는 남방의 청자도공들이 백자발전사에서 일익을 담당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