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무령왕릉 출토 동자상에 대한 성격과 배경을 구명한 것이다. 출토된 2개의 동자상은 무게 , 크기, 비중으로 보아 거의 같은 크기로 판단된다. 이를 위해 샘플로 달아본 유리 제곡옥과 같이 산화되기 전에는 파랗고 아름다운 유리 제품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2개의 동자상이 모두 허리에 구멍이 뚫린 것으로 보아 왕비의 허리에 매달기 위해 만들어졌던지 다른 물건과 함께 매달기 위해 만들어진 유물로 보여진다. 유리제 제식품은 동자상을 비롯하여 유리제곡옥류, 유리구옥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는데 이 유리 제품은 무령왕당시에 이미 유리제품을 제작할 수 있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에서도 이미 유리 제품이 제조되기 때문이다.
무령왕릉 동자상이 2개인 것은 불가에서도 동남, 동녀를 논하고 유가에서도 천지음양에 바탕을 두어서 남녀가 출생한다 보며 도가에서도 동남, 동녀를 통해서 선인을 만나게 된다고 하는 내용으로 보아 한쌍의 동자상도 동남, 동녀 한쌍으로 추정된다. 반파된 동자상이 눈이 치켜 째어지고 입도 더 커 동남으로 추정된다.
동자상은 불교, 유교, 도교에서 다같이 동남, 동녀를 이상형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온 것은 공통점이라 할 수 있으나 그 영향하에서 무령왕릉 동자상이 제작되었다고 할 근거는 희박하다. 이를 볼 때, 동자상은 유리제제식품으로부터 착안하여 발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잠자리눈알처럼 동그랗고 중권문이 있는 장식품이 중앙에 구멍이 뚫려서 꿰어 매달게 되어 있는데 이와같은 제품은 메소포타미아와 에지프트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여 중국에 제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크기는 2~3.5cm 크기로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경주에서 출토되었다. 이에 착안하여 동자상으로 발전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동자상이 만들어진 이유는 고대 원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우리의 몸에 매달고 다니거나 꿰어서 매다는 부적과 같은 대상물로 동자상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