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원삼국시대 또는 마한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낙수리와 대곡리 주거지 발굴 결과이다.
승주군 송광면 낙수리의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한 낙수리 주거지는 야산이었으나 개간하여 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6기의 주거지가 확인되었으나 원래는 10기 이상의 조그만 취락으로 추정된다. 86년 발굴조사에서는 이들 6기중의 2기만 전면발굴이 이루어졌다.
승주군 송광면 대곡리 주거지는 초기철기시대의 것과 겹쳐서 나온다. 대곡리 발굴은 도롱부락 남동부와 한실부락 남서부에 형성된 충적지대에서 행해졌으며 사질토가 쌓인 충적지대로 주거환경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
도롱지구에서 4기가 발견되었는데 4호주거지만이 원삼국시대 속하는 것이다. 한실지구에서는 원삼국시대 주거지 1기에 대해서만 전면발굴이 실시되었고 방형의 구조를 가진 움집임을 확인하였다. 다량의 연질 및 경질 토기편과 철제도자1점이 출토되었다.
마한시대에 속하는 주거지들은 앞에서 언급한 대곡리나 낙수리의 몇 예 밖에 없어 당시 주거상을 상세히 밝히기 어려우나 발굴된 것만을 가지고 고찰할 때, 대체로 얕은 구릉이나 산사면을 이용하여 파고들어간 장방형이나 말각방형의 수혈 움집에 상부 움집의 벽은 용마루가 달린 사각추나 우진각 지붕의 구조를 가지며 벽 주위에 이엉이나 풀을 덮어 보호했을 것으로 추측되어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조의 ‘草屋土室…’ 기록과 유사하다. 그러나 가야지역의 가형토기와 같이 맞배지붕을 가진 지상가옥의 형태를 가진 집으로 복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산강유역 낙수리, 대곡리 주거지 발굴조사는 전남지방의 원삼국시대 또는 삼국시대 전기에 존재했던 마한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한 계기가 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