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부여 정암리 백제요지(2·3차)발굴조사개보로 조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마 형태는 평요, 등요, 반지하식 등요가 발견되었다. 등·평요는 풍화암반층을 옆으로 파들어가 구축한 지하굴식가마로서 파괴된 천정부를 제외한 아궁이, 소성실, 연소실, 연도 그리고 회구부시설이 잘 남아있는 정형의 가마이다. 특히 3차조사시 백제시대 등요의 발견은 매우 주목되는데 이 형태와 비슷한 것이 왕진리 요지에서 발견된 바 있다. 정암리와 왕진리는 등·평요가 함께 유존하고 지리적 조건이나 환경이 흡사한데 시기적 선후관계는 현재 검토중에 있다. 등요의 형태가 계단식과 무계단식이 함께 발견되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가마가 백제시대 가마와 함께 조사되어 가마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추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와의 시대변천과정도 알아 볼 수 있다.
가마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급관계는 복수체제이다. 와류의 경우 수요처는 부여 군수리사지, 동남리사지임이 밝혀졌다. 토기류는 매우 적게 발견되나 점차 수요처가 밝혀지고 있어 주목된다.
정암리가마는 도와 병용생산체제이다. 정암리 B지구 백제시대 가마의 축조시기는 이곳 출토 와당, 토기 등 유물로 보아 6세기 중엽에서부터 7세기 초까지 장기간에 걸쳐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요시기는 가마 상호간에 시기차를 고려할 때 6세기 후엽 7세기 전반 경으로 추측된다.
정암리 일원은 백제시대 대단위 가마터가 단지를 이루며 분포하고 있어 차후 계속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정암리 가마단지 전모를 확인하여야 하며 보존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를 위해 정암리 일대는 국가사적 지정이 필요하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