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86년부터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삼룡리와 덕산면 산수리 일대에 분포한 토기요지를 연차적으로 발굴하였으며 현재까지 6개의 유적군에서 19기의 토기요지를 확인하였다. 그 가운데 6군인 산수리 요지를 소개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산수리요지군은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 195-1번지에 소재하며 8기의 가마가 확인되었다. 그중 1~4호는 소형요이고 5~8호는 대형요이다. 그러나 산수리요지군에서는 중부지방 삼국시대 백제토기의 대표적 기종 가운데 하나인 구형동체의 광구장경호는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산수리요지군의 시기가 백제중기 이후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편 산수리요지 출토토기 형식은 신봉동 토광묘 출토토기와 통하며 7호요 토기는 신봉동유적 최하층 토광묘 토기들과 같은 형식으로 이를 감안하여 산수리요지군의 중심연대를 4세기경으로 잡고자한다.
산수리요지군 출토된 타날문토기는 회청색연질토기, 적갈색계연질토기, 회청색경질토기, 적갈계경질토기, 흑색경질토기 등으로 나뉜다. 타날문토기 유형은 이처럼 갈라지지만 사실 원삼구 초기요인 1군에서부터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즉, 원삼국 초기요로부터 백제전기요로 시기가 내려오면서 바뀐 것은 기종의 출몰과 기형의 변천이지 토기유형 자체에 본질적 변화는 아니다. 토기의 기종은 시기가 내려오면서 필요에 의한 독자적 창안, 외래 도자기의 영향에 의한 발생, 금속기 등 다른 재질의 용기의 번안 등 여러 요소에 의해 추가되고 또 실용성이 없는 기종의 소멸이 진행되어 왔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최소한 백제 전기까지 백제토기요와 백제토기는 중국의 한 대 이전의 토기 생산체제 계보가 연결되는 원삼국시대 토기요와 타날문토기가 그 기반이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