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성남면 용원리 유적은 주거지를 비롯하여 분묘군으로 구성된 원삼국 말기, 혹은 백제초기의 대규모 유적군이다. 분묘군과 주거군이 구분되어 분포되어 있는데, 분묘군의 경우 토광묘와 수혈식 석실분이 혼재되고, 구역을 달리하여 횡혈식 유형이 있는 매우 특이한 것이다. 그런데 분묘군중에 토광묘와 수혈식 석실분의 구역에서 특이하게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다. 이 주거지는 위쪽의 주거지군의 유구와 상통하는 것인데, 고분군내에 포함되었다는 특징과 함께 출토품으로서 토제품이 특이성이 있는 것이다,
본고는 이 분묘군에 혼재된 주거지의 내용을 정리하여 보고한다는 목적과 함께 분묘군의 이해 전제로 주거지를 살핀 것이다. 외형적으로 주거지가 분묘에 1기만 포함되었다는 이질성은 어쩌면 분묘의 상한년대 고찰에 유익할 것이란 판단과 나아가 이 지역 유적의 이해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에서이다.
살펴본 주거지는 대체로 3세기 후반경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분군은 이 주거지보다 후행의 유적으로 볼 수 있는데, 고분군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주거지가 폐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거지는 네 귀퉁이에 대형 주공을 사용하는 방형의 수혈주거지인데, 이러한 유형의 주거지는 대체로 용원리 유적의 인근과 그 이남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특정시기의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는 문화요소로 판단된다. 그리고 주거지 출토품 중에 토제품으로 분류한 장고형 제품은 기능을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후대의 유물 중에서 백제의 장고형 기대와 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 그와 관련될 수 있다면 시원적 성격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고형 기대와의 상통성에 적극적 증거가 없는 현재로서는 오히려 初現의 자료라는 점에 보다 주목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