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능사 가람배치(도면 1)
III. 제3건물지의 건축학적 검토
IV. 7세기대 고고유물로 본 제3건물지의 기능 변화
1. 토기
2. 연
3. 인화문토기
V. 결론
요약
부여 능사는 관산성 싸움에서 억울하게 죽은 聖王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된 사찰이다. 기원사찰이라는 점과 그 공양주가 왕실이었다는 점에서 어떠한 건물유적 보다도 중요성이 크다. 아울러 東나성(동쪽의 나성) 너머에 위치하고 있는 능산리왕릉과 近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守墓處(무덤을 보호, 관리해 주는 곳)의 가능성이 적지 않다.3건물지에서는 청동제련과 관련된 청동덩어리를 포함하여 많은 슬래그와 배연구, 굴뚝, 철부, 철촉 등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유물이나 유구와 성격을 달리하는 灰色土器, 黑色瓦器, 벼루, 삼족토기 등의 유물도 출토되었다. 특히 청동 제련과 관련된 배연구와 건물지 벽체 하부시설인 고멕이는 서로 중복된 채 확인되었다.이러한 내용들은 유물의 성격상 혹은 건축고고학적인 측면에서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결과적으로 3건물지를 중심으로 시기를 달리하는 별도의 유구 즉, 공방시설이 존재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기차는 한편으로 3건물지 주변의 서배수로, 강당지 서쪽 불명 건물지, 東회랑 주변 등에서 검출되는 백제 멸망 이후의 印花文土器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