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방어 시설
Ⅲ. 공간 범위와 구성
Ⅳ. 토지 구획
Ⅴ. 사원의 존재 양상
Ⅵ. 맺음말
요약
이 글은 6세기대 사비 도성과 경주 왕경의 방어시설, 공간 범위와 구성, 토지 구획, 도성 내외 사원의 존재 양상 등을 비교한 것이다. 사비와 경주의 가장 큰 차이는 나성이라는 방어시설의 축조와 그에 따른 공간 구성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계획적인 천도가 단행된 사비 도성의 경우 나성을 축조함으로써 도성의 방어는 물론 그 내부의 5부 지역과 외곽을 구분하는 경계로 삼았다. 그 결과 5부를 중심으로 한 핵심 지역과 산성이나 고분, 국가적인 제사처가 분포하는 외곽 지역이라는 이원적인 공간 구성을 보인다. 경주 왕경의 경우 나성이 축조되지 않았지만 광역의 6부 지역과 규칙적인 도로망으로 정비된 핵심지역으로 구분된다. 그 구분은 지적도에 규칙적으로 도로의 흔적이 확인되는지의 여부에 근거하며, 경계 지점에 사원이 건립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중고기의 경주는 광역의 6부 지역과 불교적으로 성역화 된 핵심지역이라는 이원적 공간 구성을 보이고 있다.
6세기 중엽 사비와 경주에 방형의 규칙적인 토지 구획이 완비되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부여 지역에서 발굴된 대부분의 도로 유적들은 위덕왕대 후반인 6세기 중후반 이후에야 개설된 것으로 나타난다. 경주 왕경의 경우도 황룡사지가 건립되는 6세기 중반 무렵 정연한 도로 구획이 실시된 단초가 확인되지만 대부분의 도로는 7세기 후반 이후에야 개설되었다. 그런 점에서 사비와 경주의 토지 구획은 단기간에 완비된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이고 순차적으로 정비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사비와 경주의 도성 내외 주요 사원들의 공간 배치나 존재 양상은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그중 정림사지와 황룡사지는 도성의 중심축 선상에 위치하는 핵심 사찰로서 일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남조의 불교 문화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과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6세기 중후반에 창건된 능산리사지와 왕흥사지의 경우 사비 도성의 확대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례가 된다. 이들 사원들은 중고기와 중대 초기 신라의 사원 배치나 전개과정과 매우 유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