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의 군수리사지는 당탑지에서 확인되는 이형의 와적기단 형식으로 말미암아 오래전부터 건축고고학적 측면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목탑지에서 조사된 무초석의 처마 기둥은 백제의 다른 이중기단 기와집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축조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축조기법의 이질성은 결국 위덕왕 초기의 어려웠던 정치ㆍ경제적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아울러 군수리사원은 금당 동면의 또 다른 기와집의 존재로 보아 1탑3금당식의 가람배치로 조영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군수리사원은 사지내에서 확인된 와당과 연목와로 보아 6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 시기는 성왕 말기~위덕왕 전기로 생각되며 구체적으로는 위덕왕대인 555~567년 사이로 판단된다. 아울러 대시주는 위덕왕이었고 그 외 성왕계 왕족, 측근세력 등도 원찰 조영에 협조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