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백제시대의 우물지 유적
III. 풍납토성 우물지의 구조와 성격
IV. 맺음말
요약
본 논문에서는 풍납토성의 치수관련 시설의 하나로서 우물지의 축조기법과 출토유물을 중심으로 시론적으로 분석하고 진행하고, 다른 지역의 우물들도 비교 검토를 진행하였다. 우물은 일반적으로 물이 용출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풍납동에서 발굴된 우물도 역시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풍납토성은 한강과 성내천을 끼고 있으며, 성벽에 해자가 조성되어 있어 물이 용출될 수 있는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풍납토성 410번지 우물의 축조는 ‘V’자형으로 생토층으로 추정되는 자갈층까지 굴착하였다. 그리고 바닥면에는 별다른 시설없이 자갈층 위에 가공된 목재를 ‘凸’자형 또는 ‘ㄱ’자형으로 가공하여 서로 結構하였다. 이러한 결구수법은 경당지구에서 조사된 우물 하단의 목재 결구와 서로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한성 백제시대 이후에 확인된 우물지에서는 목재를 ‘凹’자형으로 가공하고 서로 결구하여 우물을 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성 백제시대의 우물은 웅진이나 사비시대의 축조 기법과 차이점이 확인된다. 풍납토성 우물의 防水 문제는 목재를 결구 시킨 후 목재와 목재사이는 뻘과 유기물을 사용하여 방수처리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풍납토성 410번지 우물은 사용 도중 중간에 한 차례 이상 붕괴하였고, 이에 대한 보수가 역시 최소 1차례 보수를 한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이러한 점은 11단에서 확인된 목재의 종류가 차이가 나는 점과 다시 터파기를 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우물의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저장 및 운반 목적의 토기에는 壺와 深鉢形土器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壺는 대부분이 경질토기이며, 구연부에 ‘凹’면을 띠고 있는 복잡구연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부 호의 구연과 동체부에는 새끼줄이 감겨져 있어 호의 용도가 두레박용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심발형토기의 문양은 繩蓆文, 鳥足文, 格子文 등이 타날되었다. 출토된 목제품에는 삼지형 목기, ‘Y’자형 목기, 그리고 두레박 등이 있으며, 기타 유기물로 똬리와 복숭아씨 등도 함께 출토되었다. 이러한 일상 생활용품들은 백제 초기 사회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 자료로 평가된다. 즉,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가 인위적으로 구연부를 깨거나 뜯어내고 겹겹이 포개진 채 출토되었는데, 아마도 경당지구의 우물은 일반적인 우물이라기보다는 44호 건물지 및 9호 遺構들과 특수한 관계의 어떤 의례적 행위들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충청이나 전라지역에서 반입된 토기도 출토되었는데, 이는 백제 중앙과 지방과의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풍납토성 우물이 축조된 시점은 토기의 형태로 미루어 4세기 후반으로 판단된다. 이는 풍납동 410번지 우물 내부에서 출토된 목재의 AMS측정결과 역시 4세기 후반으로 확인된 것과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