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익산의 백제유적 조사
III. 발굴조사를 통해 본 가람구조
IV. 수막새 편년을 통한 사찰조영의 전개
V. 익산지역 백제사찰의 특징
VI. 맺는말
요약
익산에 있는 백제유적과 관련하여 別都說, 遷都說, 經營說, 離宮說, 別府說, 神都說 등 많은 이설이 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 된 王宮里遺蹟이나 陵墓遺蹟·關防遺蹟 및 왕실조영의 3대사찰(大官寺·帝釋寺·彌勒寺) 등의 유적을 통해서 보면 익산이 어떠한 형태로든 王都였음은 부정될 수 없다. 3대사찰의 창건기획은 부여식 연화문수막새의 출토양상을 통해 볼 때 600년경이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大官寺址는 왕궁리유적의 중심부에 拜禮空間을 둔 권위적 상징체계의 독특한 가람배치로 宮墻과 더불어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사용된 창건기와는 부여식 연화문수막새로 610년경에는 완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帝釋寺址 창건가람은 1탑1금당의 배치라는 전통적인 가람구조로 추정되며, 중건가람도 그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제석사지 창건가람은 부여식 연화문수막새의 전통이 남아 있는 620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중건가람은 미륵사지와 더불어 650년경에는 완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彌勒寺址는 혁신적인 삼원병치의 가람구조로 확인되어 3대사지에서는 각각 독특하면서 전혀 다른 형태의 가람배치가 확인되었다. 가람배치의 차이는 사찰 조영목적의 차이에서 기인된다고 생각되는데 제석사지는 과거 國祖의 信仰儀禮의 기능으로, 대관사지는 현실 불교계를 통괄하면서 현재 왕실의 발전을, 미륵사지는 미래국가와 왕실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三世祈願寺刹의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삼세기원사찰의 모티브는 久遠한 여래의 永遠性을 상징하는 三世三佛信仰에서 찾을 수 있고, 이는 국가와 왕실의 영속을 기원하는 護國佛敎의 신앙구조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백제왕권의 정통성을 보여주고 국가와 왕실의 번영과 발전의 영속을 기원하고자 하는 의중에서 대관사를 중심으로 전통국가의 宗廟와 社稷的인 기능을 익산의 3대사찰들이 담당하였던 것으로 사료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