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1. 백제 ‘한성’ 도성기
2. 백제 웅진 도성기
3. 백제 사비 도성기
Ⅱ.
Ⅲ.
1. 백제 한성기 도성과 남조도성의 관계
2. 백제 웅진 도성기와 남조도성
3. 백제 사비 도성기와 남조도성
요약
백제와 중국에 있어 가장 왕래가 왕성한 시기의 하나인 梁代시기는 백제의 한성기 후기에서 시작하여 웅진시기와 사비시기의 초중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백제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개역할을 하였던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당시 동아시아지역의 서로 다른 국가의 교량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는 백제 도성문화로써 특수한 의의와 위치가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궁성유적에 있어 익산 왕궁성 유적은 현재 유일한 백제 도성왕궁의 자료로, 백제 도성이 발전하던 최고수준에서 출현된 것으로 백제도성 건설의 훌륭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익산 왕궁성 건축의 완성이 무왕시기이지만, 이 시기는 남조의 가장 마지막 왕조가 수나라에 의해 이미 멸망 한 후이다. 그러나 익산 왕궁리의 설계는 오히려 남조도성의 건강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남조의 ‘태성(台城)’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왕궁성의 평지는 남북으로 된 장방형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 정치영역, 생활영역, 궁원(宮苑)영역 등이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남조 태성(台城)기능의 공간적 구조를 모방한 것으로 이는 남조의 태성궁(台城宮)의 금원(禁苑)인 화림원(華林園)의 방법과 일치한다.
또한 익산 왕궁성에서는 대관사(大官寺)건축 유적지가 발굴되었는데, 이 사찰은 아마도 백제 무왕과 왕비의 능묘에 사용된 ‘능사’로 추정된다. 이러한 능(陵)과 사(寺)가 한 곳에 모여 있는 ‘능사합일’제도는 남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서 우리는 익산 왕궁성과 불사유적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익산 왕궁성은 백제 도성의 핵심 건축군 즉, 궁 건축의 최상의 작품이며, 동아시아지역의 다른 문명과 교류 융화하면서 특히 백제의 변혁기에 창조된 문화의 결정체이다. 그 구조를 보면 전반적으로 보존과 재현이 잘 되어 있으며, 이러한 점은 백제 한성기와 웅진기, 사비시기 도성과 중국 남조도성 건강(建康)도성 유적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매우 독특하고 귀중한 가치가 있다. 둘째. 동아시아 3-7세기의 제왕의 능묘와 불교 사찰이 결합된 능사합일 제도의 전형적인 표본이 며, 불교가 중국 남북조시기에 완성되면서 다시 한국 백제왕조에 전해지면서 더 진보된 발전을 가져 왔다. 비록 중국문헌에 남조 양대에도 능사합일제도를 기록하고는 있으나 현재까지 아직 실제 사례가 발굴된 바가 없다. 한국 익산의 능사합일제도의 범례가 발굴됨에 따라 그 가치는 매우 크다 하겠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