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국기~백제 한성기의 중부지역은 소위 呂(凸)자형 주거지로 표현되는 독특한 주거형태가 발달하였다. 이러한 주거형태는 그간 중부지역 전역에 걸친 공통적인 양상으로 파악되어 왔지만 최근 육각형주거지의 조사가 증가하면서 이를 둘러싸고 편년, 지역성 등에 걸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각론에 있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주거지의 평면형태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반면 주거지 평면형태와 함께 구조적으로 중요한 요소인 쪽구들의 경우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본고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呂자형 주거지를 재검토한 결과 쪽구들이야말로 편년과 지역성에 있어서 근간이 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呂자형 주거지의 검토 결과 평면형태는 오각형→육각형으로의 변화가 대세이지만, 유적에 따라 역전되는 사례도 존재하는 등 예외가 없지 않아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쪽구들의 경우 예외없이 ㄱ자형→l자형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그 분기점이 바로 원삼국기와 백제 한성기를 나누는 기점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단계설정은 쪽구들을 기준으로 하고 평면형태는 부차적인 용도로만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전제 하에 쪽구들 주거지의 분포양상을 검토한 결과 원삼국시대의 쪽구들은 횡성 학담리유적의 예를 제외하면 서울․경기지역에만 배타적으로 분포하며, 백제 한성기에도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을 분포하면서 영서지역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쪽구들의 중심지는 서울․경기지역이며, 백제 한성기에 영서지역에서 확인되는 쪽구들 주거지는 백제의 의도 하에 이식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노시설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서울․경기지역이 쪽구들의 배타적인 중심지이고, 영서․영동지역은 기본적으로 노지만 설치된 공통된 주거문화를 영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쪽구들의 유무를 기준으로 서울․경기지역과 영서․영동지역으로 대별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지역차는 각각 韓濊의 생활양식으로 이해될 수 있고, 쪽구들이 존재하는 서울․경기지역은 한, 영서․영동지역은 濊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