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부여의 지형 조건 및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의 입지
Ⅲ. 백제 사비왕궁의 범위에 대한 새로운 이해
Ⅳ. 맺음말
요약
본고에서는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관북리유적 내 유구의 분포양상과 중요유구의 성격, 그리고 관북리유적의 지형적인 입지 조건을 검토해 보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연구결과와는 다른 측면에서 당시 사비왕궁이 현재 관북리유적을 중심구역으로 해서 존재하였을 가능성과 왕궁의 평면 구조에 있어서도 역시 기존의 연구결과와는 다른 측면에서 동, 서, 남, 북 모두 방형인 평면구조가 아닌 일부 구간은 자연지형에 순응하는 평면 형태를 유지하였을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관북리유적이 위치한 지역은 사비도성 뿐만 아니라 현재 부여읍내에서도 남사면이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구릉이고, 주변지역을 조망하기에도 용이한, 사람이 거주하기에도 최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관북리유적은 부소산 쪽에 가까운 비교적 평탄한 능선과 그 사이의 깊지 않은 곡간부에 위치하고 있어 개발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유리하였다. 반면에 현재 관북리유적의 주변부는 상대적으로 높고 넓은 능선과 깊은 뻘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개발할 경우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드는 지형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왕궁의 조성계획 수립 시에도 이러한 여건들이 충분히 반영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내부에서 확인되는 유구 또한, 물론 발굴조사 된 범위의 한계는 있지만, 사비도성 내의 다른 지역에서는 확인된 예가 없는 규모와 성격을 하고 있으며 그 구성요소 또한 익산 왕궁리유적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서 보았을 때 관북리유적은 이도 초기를 전후한 시기에 계획을 통해 왕궁의 중심권역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충분 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비왕궁의 평면 형태는 당시 동아시아의 정형화된 장방형 평면구조 보다는 지형조건에 순응하는 평면구조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관북리유적 남쪽에 위치하는 뻘층으로 인해 남북방향 보다는 동서방향으로 넓은 평면 구조였을 것이며 동, 서, 남, 북 각각의 경계에 있어서도 최대한 정형화된 평면 형태를 유지하였겠지만 서쪽과 북쪽 특히 북쪽의 경우에는 지형적인 조건을 반영하여 부소산 남록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는 평면 형태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