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가구식기단과 계단에 대해 그 구성요소와 결구기법에 대해 살펴본 결과 지역적, 시대적으로 독특한 특징이 있음을 밝힐 수 있었으며, 이는 고대건축기술의 기원과 계통이 서로 달랐음을 추측케 한다.
형태상 그 유형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특징은 후대로 갈수록 별석으로 존재하던 부재 구성이 통돌로 통합되면서 단순화되고,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간략화하거나 장식화됨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건물 규모의 축소, 시공의 단순화, 구조적 안전성 추구 등에 그 이유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가구식기단의 유형은 6~7세기 백제계(Ⅰ), 7~9세기 신라계(Ⅱ), 9세기 이후 계승․변화형(Ⅲ)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백제계의 경우 웅진, 사비와 그 주변에서 확인되는 기단형식으로 각각의 부재를 끼워 맞추는 결구법이며, 신라형계 경우 경주와 주요 지방에서 확인되는 유형으로 각각의 부재를 짜 맞추는 결구법으로 기단을 조성하였다. 고려시대 나타나기 시작하는 유형Ⅲ의 경우 기단지대석과 면석 사이에 1~2단의 장대석이 삽입되고, 탱주석이 설치될 경우 장식화 되는 경향을 엿볼 수 있으며, 구성부재의 결구에 있어서는 쌓아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적층식 결구방식은 이후 고려말~조선시대 장대석 기단으로 이어진다.
가구식 계단 역시 기단과 마찬가지로 시대별, 지역별 변화특성이 토출되었는데, 특히, 소매석과 지대석의 배치와 결구기법에 따라 구분된다. 백제계(유형Ⅰ) 계단의 경우 지대석과 사갑석이 ‘ㄷ’형태로 배치되며, 지대석 위에 사갑석과 면석을 끼우는 형식이며, 신라계(유형Ⅰ)의 경우 지대석과 평행하게 배치하여 그 사이에 답석을 가로지르는 ‘H'배치로, 사갑석과 면석은 지대석과 함께 짜 맞추어진다. 통돌 소매석(유형Ⅲ)은 ’H'배치의 답석과 소매석 아래에 ‘ㄷ’의 결구로 지대석과 지복석이 추가된 형식으로, 그 결구는 각각의 부재를 쌓아 맞추는 것에 가깝게 변화하였다.
한편, 사분원형태의 장식화된 원형소매석 계단형식(유형Ⅳ, 쌓아 맞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 유형 역시 백제지역(9세기 이후)과 신라지역(7세기 이후)에서 서로 다른 표현방법으로 전개되며, 이후 장대석 기단과 함께 조선시대로 이어진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