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철 생산 유적의 현황
1. 삼국시대
2. 고려~조선시대
III. 중원지역의 철 생산 유적의 성격
1. 삼국시대
2. 고려시대
3. 조선시대
IV. 맺음말
요약
중원지역에서의 철 생산은 4세기대에 이르러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 철산지의 확보 후에 풍부한 원료를 바탕으로 철 생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인 발전과 정치적인 안정이 이루어지면서 활발한 대외정복이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4세기 후반 고구려와의 대립 속에서 패퇴하면서 이 지역의 철 생산은 위축된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양상은 지금까지 확인된 철 생산 유적이 한 시기에 걸쳐 운영된 것과 탄금대 토성 철정 출토 양상과 부합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후 이 지역에 진출한 고구려는 이곳에서 철 생산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신라는 충주 지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이후에 철과 철기생산을 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고려시대 중원 지역에서의 철 생산은 주로 충주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로 다인철소(多仁鐵所)로 비정되는 지역인 충주시 대소원면을 중심으로 확인되었다. 고려시대 충주지역에 철소를 설치한 후에 이곳에서 1차적인 철 생산 작업이 이루어진 후에 생산품을 개경에 공납한 것으로 보이며, 주로 수로 교통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 시기의 철 생산은 주로 중앙의 통제에 이루어졌다. 고려후기에는 정치적, 경제적인 혼란으로 인해 철소제(鐵所制)의 변화가 이루어지지만, 조선 초기에도 이 지역에도 철장(鐵場)이 설치되는 것으로 보아 충주 지역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생산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철장제의 폐지와 철장도회제의 채택, 그리고 각읍채납제의 제도 변화속에서도 충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철생산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조선중기 이후 과도한 공납으로 몰래 철을 채광하여 철 생산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철 생산은 주로 왕래가 뜸한 계곡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철 생산 이외에도 목탄요, 자기가마 등도 주변에서 확인되고 있어, 깊은 계곡부를 중심으로 생산단지가 위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