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배경 및 목적
2. 백제의 불교전래
3. 일본의 불교전래
4. 백제 목만치(木滿致)와 일본 소아만지(蘇我滿智)
5. 목만치의 부여 거주지 추정
6. <비조사-풍포사>와 <군수리사지-화지사(가칭)>와의 지리적 배치 특성
6.1 부여와 비조의 지리적 조건
6.2 비조사와 군수리사지의 가람배치
6.3 감강구(甘橿丘)와 화지산(花枝山)
6.4 풍포사와 화지사(가칭)
6.5 화전지(和田池)와 궁남지(宮南池)
6.6 비조천(飛鳥川)과 화지천(花枝川, 가칭)
6.7 사찰과 사찰사이의 거리와 접근방법
7. 결 론
요약
백제 부여는 일본 비조와 지리적으로 매우 비슷하다고 일찍부터 지적되어 온 지역이다. 필자 역시 수차례 비조와 부여를 답사하면서 지리적으로 매우 유사함을 느껴오며 그 동질성을 찾아보려 하였다. 그런데 백제 사비시대의 사찰에 대한 기록은 물론 일본에 불교를 전래한 기록조차 우리나라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발굴에 의한 고고학적 접근에 의한 추정이 대부분으로서 연구의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백제 사비시대와 일본 비조시대의 불교사찰 조영에 있어 상호 동질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시작되었다. 6세기 백제의 비구니사찰과 비구사찰의 관계를 기술한 옛 기록과 비조사 서문의 의미와 목만치와 소아만지가 동일 인물이라는 기왕의 연구 성과로 부터 본 연구는 출발한다. 일본 비조지역에 위치하는 비조사와 풍포사의 지리적 관계의 특성을 감강구, 비조천, 화전지, 550미터 거리 등을 중심으로 그 관계를 정리하였으며 같은 맥락으로 백제 부여의 군수리사지와 화지사(가칭)와 비교함으로서 상호 동질성을 증명할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결론을 인정할 수 있다면 풍포사와 비조사가 소아만지의 후손인 소아마자 시기에 조영되었기 때문에 군수리사지와 화지사(가칭)를 조영한 사람은 아마도 목만치의 후손으로 성왕 때 중신인 목협마나(木劦麻那), 목윤귀(木尹貴), 목협미순(木劦眯淳) 등으로 추정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기 바로 전해인 537년 9월 백제가 장육불을 만들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이 보이는데 이 불상이 바로 군수리사지의 본존불이라는 추측이 가능할 것이다. (필자 결론)